나의 숙소-강릉매화임대아파트

고박사가 본 세상 2017. 7. 18. 18:34

아마 2003년부터 숙소로 사용하였던 나의 아파트를 14년만에 처분하였다. 등기상은 2008년으로 되어있지만 이는 임대아파트를 법적으로 인수한 날자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2003년부터 숙소로 사용하였다.  그전에 살던 -정말로 어렵게 살던 초당동의 이화해변타운 아파트(이하 초당동)에서도 홀로 14년을 버텼는데, 초당동에 비하면 매화임대아파트에서의 또 다른 14년은 '저택'이라고 표현하기는 쑥스러워도  하루 일과를 마친 교수라는 직분의 한 남성이 쉬기에 풍족하고 안락한 보금자리이었던 것같다. 이 아파트로 옮길수 있게 도와준 그리고도 그 이후 14년이상을 서울-강릉을 같이 다녔던 K교수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우연하게도 1989년 여름방학중인 8월에 이화아파트에서 초당동으로 옮겼고, 초당동에서 매화로 옮긴 것도 2003년 여름방학.

  그런데 요번에도 14년만인 6월달 정확히 6월 16일에 집을 비워주었다. 항시 내가 편하게 옮길수 있는 방학중에 숙소를 옮길 수 있었으니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거실- 소파에, 보이지는 않지만 등나무 안락의자(유모교수 기증) 오디오시스템에 멀리 암스테르담에서 손수 들고 들어온 windmill 등등

 

 

매화임대아파트는 억지로 인수하기는 하였지만 별 사고 없이- 전에 숙소로 사용하였던 해변타운처럼 겨울철 방학기간중에 수도관이 동파된다거나, 추운 겨울에는 근무도중 짬을 내어 내려가 번개탄 연기를 들이켜가며 연탄보일러를 켜 놓고 다시 연구실로 복귀하는 등의 불편함없이(매화에서는 기름보일러에서 가스보일로 교체하였지만 둘 다 열 효율이 괞찮아 퇴근후 보일러를 작동시켜도 큰 불편없이 지냈다) 잘 사용하여 너무 정들은 아파트이다.

내 침실(안방)-저렴한 것이었지만 그런대로 쓸만했던 침대, LG33인치 TV, 결혼때부터 같이하던 침대옆 장식장 그속에는 1982년 일본에서 손수 들고 들어온 파이어니어 오디오, 그리고 누우면 항상 내눈에 같이하던 저 사진들, 특히 그속에 있는 아내와 함께 자고 깨곤 한다.

 

 

거실의 오디오-  집처분 1학기전에 대형스피커는 이집을 소개해준 그 교수에게 드려서, 할수 없이 아담한 일제 테크닉스에 연결한 오디오 세트, 그 위에 암스테르담발 windmill....

 이집 구매후 유일하게 손을 본 화장실의 변기와 세면대, 샤워..

 

고맙다.

잘 살았다.

잘 살아온 14년동안 나도, 너도   많이 늙고 낡아졌겠구나!

그래도 어디 한 곳  상한 곳없이 잘 버텨주어 고맙구나!

이제 딴 사람에게 맡겼으니, 잘 가거라! 

 

이 모든 물품을 고스란히 남긴채 몸만 나왔습니다. 집을 인수하신 낭인이 "그냥 다 놓고 가십시요. 제가 다 치웁니다"라고 하는 소금강에서 카페를 운영하시던 낭인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