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도산성
지안에는 도성 유적으로 국내성과 환도산성이 있고 이외에 크고 작은 1만2천여기의 고분이 도시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어, 400년 도읍지의 자취를 전해준다. 평지성인 국내성은 왕궁과 관청이 있고 귀족들과 일부 평민들이 거주하는 도성이었다. 환도산성은 위급할 때 피난하는 방어성으로, 험준한 산세에 의지한 산성 안에는 궁궐터가 남아 있다
환도산성은 3면이 산세를 이루어 막아주고 있어 한면만 방어하면 되는 지형적 유리함으로 견디어 낼수 있었습니다. 이곳은 국내성에서 걸으면 1시간 이내에 있다. 그 당시 군인의 걸음으로는 한 30분이내면 족하리라.
고구려는 중국으로부터 여러번 공격을 받았으나 건재하다가 TV드라마'광개토대왕'에서 나온 것처럼 전연(후연이 있기전: 선비족 모용씨(慕容氏)가 세운 전연(前燕·337∼370)과 후연(後燕·384∼409)으로 구분됨) 이 쳐들어왔을 때 완전히 대패당하여 산성은 물론 궁궐도 파괴되어 터전만 남아있단다.
지형도를 보면 남쪽의 하단면만 방어하면 됩니다. 나머지 삼면은 산으로 험악하여 침공하기 힘듭니다. 하단면의왼쪽 동그란곳은 물이 흐르는 냇가(아주 작습니다만)이고 가운데 모자 햇같은 부분이 아래 사진이며 가운데 배수로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내의 동그란 큰점은 망루이고 오른편의 네모는 궁궐터로 지금은 기단만 남아있습니다.
이 지형도의 입구부분이 바로 이곳인 것이다.
이 사진의 왼쪽부분은 아래와 같습니다.
망루의 모습
망루에서 지안시내를 보면 이렇습니다.
그리고 궁궐은 서기 198년에 남북으로 95.5미터 동서로 75미터의 지어졌는 데, 342년 전쟁중에 파괴되었다.
바로 AD 342년은 TV 드라마 광개토대왕에서도 언급되는 대목이다. 역사적으로는 광개토왕의 할아버지 고국원왕(재위 331∼371)은 342년 전연의 침공을 받아 수도 국내성이 함락되고 왕모와 왕비를 비롯한 5만 명의 주민이 포로가 되는 대참패를 당했다. 바로 이 역사적 사실은 이 안내문에 쓰인것처럼 '- destroyed in the war in A.D.342' - 바로 이구절. 전연놈들이 무참히 밟고 지나가고 그것도 모자라 5만명을 포로로 데려가 무슨짓을 시켰을지 뻔합니다. 이래서 중국 떼 놈들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