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렸을 때의 8월4일의 기억:
아마 돈암동, 혹은 종암동 한옥집에서의 내 생일 풍경입니다.
돈암동 성신여대 밑에서 중학교를 입학하였으니, 65년까지 돈암동에서 살고, 그후 종암동집으로 이사하여 거의 1년정도 살고 불광동으로 이사한 것으로 기억됩니다.
돈암동이던 종암동이던 내나이 10대 초반시절, 큰 대야속에 수박 한덩이 통채로 넣고 시원해지라고 계속 펌프질하고 있습니다.
그때 한옥집의 구조는 거진 ㅁ자로 둘러싸여 건물이 있고, 그 가운데가 마당으로서 펌프와 수도가 같이 있었고 그옆에 빨래를 할수 있는 빨래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종암동집은 한옥 짓은 후에 개축?한 목욕탕이 건너 집 쪽에 붙어있는 그런식의 한옥집 앞마당이었지.
왜 계속 펌푸질이냐고 외할머니가 묻는다.
수박 시원하게 먹을려고..
하도 펌프질 해대니까 외할머니가 동전 몇개주며 얼음 한덩이 사오란다.
그때나 지금이나 8월4일은 중복과 말복 사이의 땡볕에 모든 것을 불태워버릴 듯한 날씨의 무지 더운 날이었지만 시원한 얼음 만지는 맛에 동네 얼음집으로 냅다 단박질하여 간다.
한자로 '빙'자가 쓰여있는 얼음 냉동고에서 지금의 큰 여행용 carrier만한 얼음덩이를 꼬챙이로 끌고 나온 얼음장수는 톱으로 적당한 크기의 얼음을 썰어준다. 그당시는 큰 비닐주머니는 물론 큰 종이 백도 없던 시절 - 새끼줄에 묶어주는 얼음 한덩이 건너받고는 얼음을 몇번씩 만지작거리면서 울루랄라 집으로 달려온다. 이것만으로도 시원해 지기 시작. 송곳을 이용하여 크게 반을 뚝 잘라서 수박이 있던 큰 대야에 덤벙넣고, 나머지는 장도리와 송곳을 이용해 자그맣게 부셔놓으면 미숫가루물에 얼음 듬뿍 넣어 더위를 달래곤 했다.
그 때 내 생일 선물중 가장 맛있는것은 첫째 수박, 둘째 얼음 넣은 냉국수( 할머니가 만든 잔치국수로 기억) ....
또 기억나는 것으로 이렇게 얼음을 사 오는 날이면 그래도 생일이라고 냉 미역국을 먹기도 했는데,
미역국맛이 아니라 찬 얼음과 함께 띄여준 채친 오이맛 이것이 입맛을 당기곤 했다.
요즘식의 생일 선물??
2대독자였음에도 그런것 생각 안난다.
자식을 4명이나 두었는데, 아들이라고 나에게만 선물할 수도 없었을 것으로 좋게 생각한다.
그땐 수박 삼각뿔로 한귀탱이 도려내어 색깔 보고 사곤했지. 값 지불하자마자 다시 꿰맞추어 닫았던 삼각뿔 조심스레 꺼내어 농염하게 익은 수박한쪽 입속에 넣어본다--- 이게 수박 맛
이제 70을 살아가며, 한국나이 70에 차린다는 7순은 코로나덕에 모임자체를 생각도 못하고 있던 그런 시절이었다. 더우기 친손녀를 본지 45일만에 찾아 온 7순 날. 누구하나 만나자는 말도 못 꺼내고 우리도 아들집에 가기도 신경쓰이는 그런 분위기의 시절.....
그래도 아들과 며느리가 우리를 집으로 초대, 아들 집에서 손녀를 포함 5명이 만찬을 나누었다. 사실 우리 4명만 먹었지만. 메뉴는 거의 배달 받은 만찬- 갈비에, 전에 웬만한 것 다 있었던 기억!!! 애 보기도 힘든데 생각해서 주문하는 것도 큰일이었겠지.
그 때에도 점심을 만찬으로 하고 내가 집앞 이마트가서 큰 수박 하나 사왔을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만 70세인 어제는 딸과 아들이 모두 해외?에 있는 그런 날이 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누이 3명과 점심을 불고기집에서 나누었다. 교포누이가 굳이 산다고 하여 모처럼 누이한테 얻어먹었다.
요즘 수박값이 미쳐 날뛰었지만 옛 생각과 함께 즐기려고 성남 하나로마트에서 거진 25,000원주고 사서 누이집에 들어가 이렇게 수박얘기하면서 먹었다.
내생일에 수박 얘기 빼면 재미없을 것 같아서~~~~~
저녁까지 같이하기엔 조금 뭐해서 우리는 찬서리 막국수 흥원막국수가서 수육(17,000)에 비빔 곱배기(10,000) 시켜서 잘 먹고 왓다. 그 먼곳까지 갈만하다는 생각. 추 후 비교를 위해 가격을 써 놓았다.
집에 들어와 웃통 벗고 있는데 유이가 영상통화했다. 할아버지 왜 옷 벗고 있어?- 후딱 옷입고...
해외인 제주도의 밤 하늘은 너무 이국적이고 전갈자리도 보았다 한다. 정말 다행이다 서울의 밤하늘은 별이 일고여덟 개 있다. 어린아이들 기르면서 추억을 함께하기에 서울은 여러모로 0점이다.
1984~5년경 강릉에서 내 딸과 같이 보았던 은하수를 이제 한국에서 또 볼수는 없을 것같다.
아마 내 딸은 강릉에서 보았던 밤하늘의 은하수를 기억하지는 못한 채, 아빠의 말대로만 어릴 시적에 그런 일이 있었나 보다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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